건강

“기준치는 안전을 보장하는가”… 수입 과일 잔류 농약의 ‘복합 장기 노출’ 딜레마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와 함께 수입 과일이 일상 식탁에 깊숙이 자리 잡았지만, 잔류 농약의 장기적 안전성을 둘러싼 소비자 불안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정부는 수입 과일 전반에 농약 허용기준 강화제도(PLS)를 적용해 기준치 이내 제품만 유통된다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개별 성분의 기준 충족 여부만으로는 실제 건강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여러 농약 성분에 동시에 노출되는 ‘복합 노출’과 수십 년에 걸친 ‘만성 노출’의 영향을 평가하는 체계가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특히 면역 체계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아동과 노인에게 ‘기준치 이내’는 절대적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잔류 농약이 인체에 미치는 주요 경로는 내분비계 교란과 체내 축적이다. 일부 농약 성분은 호르몬과 유사한 구조를 가져 세포 수용체와 결합하며 정상적인 호르몬 신호 전달을 방해하는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개별 과일에 남은 농약이 극미량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과일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체내 유입된 화학 물질들이 상호작용해 독성을 증폭시키는 이른바 ‘칵테일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물질은 지방 조직에 축적돼 신경계 발달이나 생식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해독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태아와 영유아는 같은 노출량에서도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유통 과정에서의 구조적 한계도 위험을 키운다. 식품 안전 공학 분야의 김지훈 교수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는 수입 과일은 부패를 억제하기 위해 수확 이후에도 농약을 처리하는 ‘포스트 하베스트’ 공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일부 성분은 과육 내부로 침투할 수 있고, 국내에 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화학 물질이 혼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표면 세척만으로는 내부 잔류 농약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며, 잔류 독성에 대한 검사 항목과 모니터링 빈도를 확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험 평가 방식의 전환 필요성도 제기된다. 독성학 전문가 서은주 박사는 “현재의 안전 기준은 단일 농약을 기준으로 설정돼 있고, 성인 평균 체중을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러 성분을 합산해 평가하는 누적 위해성 평가를 제도적으로 도입해야 실제 노출 위험을 반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가 원산지와 농약 사용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이력 추적 체계를 강화해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것도 신뢰 회복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수입 과일 안전성 논란은 풍요로운 식탁 이면의 화학적 비용을 다시 묻게 한다. ‘기준치 이하’라는 문구는 규제의 출발점일 뿐, 장기적 안전성을 담보하는 최종 결론은 아니다. 환경 독성 물질의 영향은 복합적이고 축적되며, 그 결과는 수십 년 뒤에야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전한 먹거리는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보건의 기반이며, 과학적 검증과 예방 원칙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소비자 차원의 노출 저감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세척하고, 담금 과정을 거치면 수용성 농약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껍질이 얇은 베리류나 수입 포도는 특히 세심한 세척이 요구되며, 가능하다면 껍질 제거, 제철 과일 선택, 잔류 농약 관리가 비교적 엄격한 생산지를 고르는 전략이 장기 노출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수입 과일 잔류 농약 문제는 정부의 엄격한 관리와 제도 개선, 그리고 소비자의 정보 기반 선택이 맞물릴 때 완화될 수 있다. 전 지구적 식량 이동이 확대될수록 화학적 노출의 관리 기준 역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 ‘기준치’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노출 현실을 반영한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풍요로운 식탁을 건강한 수명으로 연결하는 최소 조건이다.

본 글은 아델린뉴스에 저작권이 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https://pixabay.com

기사작성 : 박민호 (p_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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